10월의 도쿄는 애매한 계절이다. 단풍이 들기엔 이르고, 벚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이 계절의 도쿄는 걷기에 딱 좋고, 숨쉬기에 편하다. 이번 여행의 키워드는 네 가지였다. 책과 문구, 오는 문화, 도시의 에너지, 그리고 먹고 마시는 것.
📚 책과 문구 — 진보초·이토야
진보초에 도착했을 때 마침 제44회 칸다 고서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노점상처럼 길 위에 늘어선 책들, 그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책장을 넘기는 어르신의 뒷모습이 이 거리의 전부를 설명해줬다. 축제라지만 화려하지 않다. 그냥 책이 있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책을 고르는 시간이 있을 뿐이다.
일본 출판시장도 스마트폰에 밀려 쇠퇴하고 있다지만, 진보초만큼은 그 흐름을 비껴가는 것 같다. 아니, 정확히는 그 흐름에 무관심한 것 같다.

긴자의 이토야는 진보초와는 전혀 다른 결이다. 12층짜리 건물 전체가 문구점이라는 사실이 이미 하나의 선언이다. 피셔 스페이스펜은 결국 사지 않았다. 무중력 상태에서 쓸 일이 생기면 그때 사기로 했다.
🌉 오는 문화 — 오다이바·도쿄타워
오다이바 해변에 서면 묘한 기분이 든다.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고, 브루클린브릿지와 금문교를 섞어놓은 듯한 레인보우브릿지가 흐린 하늘 아래 걸쳐 있다. 그리고 저 멀리, 에펠탑처럼 붉게 빛나는 도쿄타워.


세계의 좋은 것을 가져다 자기 방식으로 재배열하는 능력. 분재, 수석, 피규어, 미니어처까지 이어지는 맥락을 생각하면 이건 일본인 특유의 감각이다.
🌃 도시의 에너지 — 신주쿠·시부야·롯폰기·긴자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를 야간에 내려다보면 숨이 막힌다. 신호가 바뀌는 순간 사방에서 쏟아지는 인파. 강남역인지 홍대인지 헷갈릴 것 같으면서도, 분명히 다른 무언가가 있다.

롯폰기 힐스 모리타워 전망대에 올라서면 도쿄의 스케일이 새삼 실감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빛의 바다.


🍜 먹고 마시는 것
여행의 절반은 먹는 것이다. 신주쿠 골목 잇테키야에서 먹은 라멘 한 그릇. 진한 육수에 차슈, 반숙 달걀. 줄을 서서 기다렸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츠키지 시장 근처에서 먹은 마구로동은 참치가 밥 위에 수북이 쌓인 채 나왔다. 이것만으로 충분한 한 끼.

에비스 맥주 양조장에서는 4가지 맥주를 한 자리에서 맛봤다. 여행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 가깝고도 먼 나라
도쿄에 올 때마다 드는 감정은 복잡하다. 좋다. 그런데 마냥 좋지만은 않다. 역사를 잊지 않으면서도 배울 건 배우는 것. 그게 이 나라를 대하는 합리적인 자세일 것이다.
맛있는 걸 먹고, 맥주도 마시고, 많이 걷고, 많이 봤다. 도쿄타워 불빛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으며 —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또 오게 될 것 같다, 이 도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