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10월의 기록 — 2024

10월의 도쿄는 애매한 계절이다. 단풍이 들기엔 이르고, 벚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이 계절의 도쿄는 걷기에 딱 좋고, 숨쉬기에 편하다. 이번 여행의 키워드는 네 가지였다. 책과 문구, 오는 문화, 도시의 에너지, 그리고 먹고 마시는 것.

📚 책과 문구 — 진보초·이토야

진보초에 도착했을 때 마침 제44회 칸다 고서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노점상처럼 길 위에 늘어선 책들, 그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책장을 넘기는 어르신의 뒷모습이 이 거리의 전부를 설명해줬다. 축제라지만 화려하지 않다. 그냥 책이 있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책을 고르는 시간이 있을 뿐이다.

일본 출판시장도 스마트폰에 밀려 쇠퇴하고 있다지만, 진보초만큼은 그 흐름을 비껴가는 것 같다. 아니, 정확히는 그 흐름에 무관심한 것 같다.

진보초 칸다 고서축제 — 책을 고르는 시간
진보초 칸다 고서축제 — 책을 고르는 시간

긴자의 이토야는 진보초와는 전혀 다른 결이다. 12층짜리 건물 전체가 문구점이라는 사실이 이미 하나의 선언이다. 피셔 스페이스펜은 결국 사지 않았다. 무중력 상태에서 쓸 일이 생기면 그때 사기로 했다.

🌉 오는 문화 — 오다이바·도쿄타워

오다이바 해변에 서면 묘한 기분이 든다.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고, 브루클린브릿지와 금문교를 섞어놓은 듯한 레인보우브릿지가 흐린 하늘 아래 걸쳐 있다. 그리고 저 멀리, 에펠탑처럼 붉게 빛나는 도쿄타워.

오다이바 레인보우브릿지
오다이바 레인보우브릿지
도쿄타워 야경
도쿄타워 야경

세계의 좋은 것을 가져다 자기 방식으로 재배열하는 능력. 분재, 수석, 피규어, 미니어처까지 이어지는 맥락을 생각하면 이건 일본인 특유의 감각이다.

🌃 도시의 에너지 — 신주쿠·시부야·롯폰기·긴자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를 야간에 내려다보면 숨이 막힌다. 신호가 바뀌는 순간 사방에서 쏟아지는 인파. 강남역인지 홍대인지 헷갈릴 것 같으면서도, 분명히 다른 무언가가 있다.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

롯폰기 힐스 모리타워 전망대에 올라서면 도쿄의 스케일이 새삼 실감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빛의 바다.

롯폰기 힐스
롯폰기 힐스
도쿄 야경 전망
도쿄 야경 전망

🍜 먹고 마시는 것

여행의 절반은 먹는 것이다. 신주쿠 골목 잇테키야에서 먹은 라멘 한 그릇. 진한 육수에 차슈, 반숙 달걀. 줄을 서서 기다렸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잇테키야 라멘
잇테키야 라멘

츠키지 시장 근처에서 먹은 마구로동은 참치가 밥 위에 수북이 쌓인 채 나왔다. 이것만으로 충분한 한 끼.

츠키지 마구로동
츠키지 마구로동

에비스 맥주 양조장에서는 4가지 맥주를 한 자리에서 맛봤다. 여행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에비스 맥주 양조장
에비스 맥주 양조장

🏯 가깝고도 먼 나라

도쿄에 올 때마다 드는 감정은 복잡하다. 좋다. 그런데 마냥 좋지만은 않다. 역사를 잊지 않으면서도 배울 건 배우는 것. 그게 이 나라를 대하는 합리적인 자세일 것이다.

맛있는 걸 먹고, 맥주도 마시고, 많이 걷고, 많이 봤다. 도쿄타워 불빛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으며 —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또 오게 될 것 같다, 이 도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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