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도착한 첫날, 트로카데로 광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에펠탑이 눈앞에 있었다. 사진으로 수백 번 봤던 그 탑이, 실제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설렘이란 이런 것인가 — 가슴 어딘가가 묵직하게 눌리는 느낌. Bonjour, Paris.


🏛️ 개선문 — 올라가본 자만이 안다
에투알 개선문은 멀리서 보는 것과 직접 오르는 것이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나선형 계단을 300개 넘게 오르고 나서야 마주하는 파리의 파노라마. 샹젤리제 거리가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그 장면 앞에서, 다리가 풀렸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 도시는 이렇게 설계되어 있었다. 중심에서 모든 것이 뻗어나가는 구조.

🗼 에펠탑 — 시민이 지켜낸 철의 기념물
에펠탑을 왕이 지시해서 세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 않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시민 공모로 설계됐고, 원래는 20년 뒤 철거될 운명이었다. 하지만 파리 시민들은 이 기묘하고 거대한 철골 구조물을 없애기를 거부했다. 민주주의가 건축물을 구한 셈이다. 샹 드 마르스 공원에서 올려다본 에펠탑은 그래서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 루브르 · 오르세 · 퐁피두 — 미술의 수도
루브르 앞 유리 피라미드는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다. 그 아래에 40만 점의 유물이 잠들어 있다. 모나리자 앞에는 항상 인파가 몰려 있다. 생각보다 작은 그림 앞에 수백 명이 서 있는 광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다. 다빈치가 이 장면을 봤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조르주 퐁피두 센터는 건물 자체가 도발이다. 배관과 에스컬레이터를 건물 바깥으로 꺼내 놓은 설계. 내부를 완전히 비워 전시 공간을 극대화하겠다는 발상. 파리가 왜 현대미술의 수도인지, 건물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 생트 샤펠 · 팔레 가르니에 — 빛과 소리의 건축
생트 샤펠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1,113개의 유리 패널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성당 전체를 물들이는 순간, 숨이 멎는다. 팔레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는 그 화려함이 지나쳐 처음엔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한참을 보다 보면 이 과잉이 오히려 아름답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 예술 제본 ·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 책의 도시
파리가 나에게 가장 특별했던 이유는 책이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은 센강 바로 옆에 있다. 헤밍웨이, 제임스 조이스, 조지 오웰이 드나들던 그 공간. 낡은 책들이 천장까지 빼곡히 쌓인 서가 사이를 걷다 보면, 문학이란 게 공간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된다.

예술 제본 공방도 빠뜨릴 수 없다. 가죽으로 장정한 책 한 권에 500유로. 처음엔 터무니없다 싶었는데, 직접 보고 나면 이해가 된다. 마블링 문양의 면지, 금박으로 새긴 제목, 수백 년을 버티도록 만든 바인딩. 이건 책이 아니라 공예품이다.

📖 BnF 리슐리외 — 지식의 신전
프랑스국립도서관 BnF 리슐리외 분관의 열람실은 사진으로 봤을 때와 실제가 완전히 다르다. 뻥 뚫린 천장, 4층 높이의 책장, 그 아래 조용히 앉아 공부하는 사람들. 나도 태블릿을 꺼내고 한참을 그냥 앉아 있었다. 이 분위기 속에서는 아무 것도 안 해도 충분한 느낌이었다.

🏰 베르사유 · 앵발리드 · 몽마르트르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광대해질 수 있는지를 정원으로 증명한 공간이다. 앵발리드의 황금 돔 아래에는 나폴레옹이 잠들어 있다. 몽마르트르 언덕을 오르면 파리 전체가 발 아래 펼쳐진다. 사크레쾨르 대성당의 흰 돌은 어떤 날씨에도 빛난다.



🍽️ 먹고 마시는 파리
에스카르고는 생각보다 맛있다. 달팽이라는 선입견을 내려놓으면, 버터와 마늘이 잘 밴 부드러운 식감이 남는다. 바게트는 파리에서 먹어야 진짜다. 크레페는 길거리에서 손에 들고 먹는 게 정답이다. 1일 1 와인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였다. 파리에서는 혼술도 품위 있어 보인다.

🏙️ 라데팡스 · 파리의 스카이라인
몽파르나스 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파리는 에펠탑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도시였다. 현대와 고전이 공존하는 스카이라인. 라데팡스의 신개선문은 구 개선문과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파리는 우연이 없는 도시다. 모든 것이 계획되어 있고, 그 계획이 아름답다.


Au Revoir, Paris
파리를 떠나는 날 아침, 센강변을 마지막으로 걸었다. 강물은 어제와 같이 흐르고 있었고, 노점상들은 오늘도 고서를 늘어놓고 있었다. 누군가 길을 물어봤고, 나는 서툰 몸짓으로 답해줬다. 이 도시는 여행자에게 관대하다.
파리는 크지 않다. 하지만 깊다. 골목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있고, 돌 하나하나에 역사가 있다. 다음에 또 오게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든 채로, 비행기에 올랐다. Au revoir, P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