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 도착한 건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짠 냄새가 먼저 왔다. 냄새란 참 기묘한 것이어서, 눈이 채 초점을 잡기도 전에 몸이 먼저 안다. 아, 바다가 가깝다고.
머뭇거리는 빛
돌산대교 아래로 내려가는 길, 낮의 마지막 빛이 바다 위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여수의 바다는 어딘가 머뭇거리는 빛을 가지고 있다. 완전히 지지 않으려는 듯, 수면 위에서 오래 흔들리다가 천천히 사라진다. 나는 그 머뭇거림이 좋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밤 시장 쪽으로 걸었다. 여수 밤바다, 라는 노래가 있다. 막상 그 바다 앞에 서면 노래가 먼저 떠오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왜 만들어졌는지가 이해된다. 흥청거리는 포장마차의 불빛과 방파제 너머 어선의 불빛이 뒤섞여서, 여수의 밤은 제법 화려하게 젖어 있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도 되는 시간
나는 굴구이 하나를 시켜 방파제 끄트머리에 앉았다. 굴은 뜨거웠고, 바람은 차가웠고, 멀리서 배가 지나갔다. 배가 지나간 자리에 물결이 일었다가 사라졌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 그 자리를 한참 바라보았다. 여행이란 아마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도 되는 시간.
향일암 — 전부 보이지 않을 때 더 깊어 보이는 것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향일암으로 향했다. 땀이 날 즈음 틈새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창처럼, 돌과 돌 사이로. 그 작은 창으로 본 바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가장 크게 느껴졌다. 전부 보이지 않을 때 오히려 더 깊어 보이는 것들이 있다.
정상의 암자는 조용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다도해의 섬들이 안개 속에서 흐릿하게 떠 있었다. 느끼는 걸 바로 언어로 바꾸면, 그 감각의 절반은 잃어버린다.
익숙해서 보는 것
여수를 떠나는 날, 다시 바다가 보였다. 더 이상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그냥 바다였다. 처음엔 설레어서 보고, 마지막엔 익숙해서 보는 것, 그 사이의 짧은 시간이 여행의 전부인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와서도 가끔, 바람이 좀 차고 밤이 길어지는 날이면 문득 그 방파제가 떠오른다. 뜨거운 굴과 차가운 바람과 사라지는 물결. 어디선가 또 한번 여수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은 아마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바다가 보고 싶은 날일 것이다.